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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과정에서 논문을 써야 하는 이유는 단순히 학문적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반드시 갖추어야 할 핵심 역량을 기르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인을 감성적이고 감각적인 분야로만 이해하지만, 실제로 훌륭한 디자이너가 되기 위해서는 감각적 창의성뿐 아니라 문제를 구조화하고, 사용자 경험을 해석하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타인에게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는 논리적 사고 능력이 필수적입니다. 감각은 디자인의 출발점이지만, 논리는 그 디자인을 사회와 사람에게 의미 있는 결과물로 연결시키는 힘입니다.
이러한 맥락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거장 알레산드로 멘디니(Alessandro Mendini)입니다. 멘디니는 프루스트 의자나 그로닝거 미술관 같은 상징적 디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사실 그의 커리어의 절반 이상은 비평가, 이론가, 그리고 잡지 편집장으로서 활동한 시기였습니다. Casabella, Modo, Domus 같은 유력 디자인 매거진을 이끌며 그는 디자인의 본질, 시대적 맥락, 사회적 의미를 분석하고 정리하는 ‘논리적 글쓰기’를 누구보다 깊이 있게 다뤘습니다. 멘디니의 글쓰기 능력은 단순한 문장력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구조화하고, 디자인을 해석하며, 본인의 창작을 설득력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사고 체계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로 이 논리적 사고의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그는 50대 이후에 디자이너로 다시 주목받으며 독창적이고 강렬한 작품들을 만들어낼 수 있었습니다. 즉, 멘디니의 디자인은 감성적 표현의 결과로 보이지만, 그 밑바탕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비평적 글쓰기, 분석적 사고, 개념을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힘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그의 디자인이 단순한 오브제를 넘어 ‘담론’을 만들고 시대를 대표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디자인 대학원생에게 논문 작성이 중요한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논문을 쓰는 과정은 문제를 정의하고, 근거를 찾고, 주장을 정교하게 다듬고, 연구의 의미를 구조적으로 설명하는 훈련입니다. 이는 곧 디자이너가 현장에서 사용자·클라이언트·동료 디자이너·경영진을 설득할 때 사용하는 설득의 언어, 사고의 구조, 창작의 논리를 기르는 과정입니다. 논리적 글쓰기는 자연스럽게 생기는 능력이 아니며, 논문 작성이라는 깊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서만 길러집니다.
디자인 분야는 점점 더 다양하고 복잡한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기술·사회·문화적 맥락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이런 시대에 감성·감각만으로는 영향력 있는 디자이너가 되기 어렵습니다. 빛나는 감각 위에 탄탄한 논리가 더해질 때, 그 디자인은 사람을 움직이고, 기업을 설득하며,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을 갖게 됩니다. 멘디니가 그랬듯이 말입니다.
따라서 디자인 전공자에게 논문 작성은 단순한 학업 과제가 아니라, 창의성과 논리성의 균형을 갖춘 훌륭한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위한 필수적인 훈련입니다. 멘디니가 비평과 글쓰기를 통해 자신만의 독창적 디자인 세계를 구축했듯, 디자인 대학원생에게 논리적 글쓰기는 미래의 창작과 리더십을 뒷받침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가 됩니다.
25.12.08 박기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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